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한산성 행궁 (문단 편집) == 배치 및 복원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88b067faf3f97c8bfe18fff0f0fde323de52a775f4e6edec2d05b1f95a673c07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gold '''행궁 구조도'''}}} || [[조선시대]]에는 [[전국]]에 20개소 정도의 [[행궁]]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이 광주행궁만이 유일하게 [[종묘#s-2.7]]와 [[사직#s-2]]을 두었다.(좌묘우사)[* [[궁궐]]이 있는 [[수도(행정구역)|도성]]을 배치할 때에는 주례 고공기에 기록된 도성배치 기준에 따라 궁궐의 왼쪽(동쪽)에는 [[종묘]]를, 오른쪽(서쪽)에는 [[사직단]]을 두었으며 이러한 원리를 '좌묘우사'라고 한다.] 비상시에 예비 [[수도(행정구역)|수도]]로서의 기능을 했기에 필요한 시설을 모두 갖추어 놓았다. 원래 건물은 상궐 72.5칸, 하궐 154칸으로 모두 226.5 칸의 규모였지만, [[일제강점기]] 때 [[일본인]]들이 헐어버려 터만 남아 2002년부터 내행전을 비롯하여 일부 부속건물들을 복원하기 시작 2012년 5월 252.5칸의 모습으로 [[복원]]했다. --복원물이 더 커졌는데?-- 부속건물로는 재덕당[* 현재 복원된 건물로,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추정된다.], 내행전[* 현재 복원된 건물로, 왕의 생활공간이었다.], 남행각[* 현재 복원된 건물로, 요즘의 경호원 비슷한 곳이다.], 북행각[* 현재 복원된 건물로, 요즘의 비서실 비슷한 곳이다.], 좌전[* 현재 복원된 건물로, 역대 왕과 왕비의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다.], 좌승당[* 현재 복원된 건물로, 광주부에서 제일 높은 책임자가 업무를 보던 공간이다.], 외행전[* 현재 복원된 건물로, 왕과 신하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.], 일장각[* 현재 복원된 건물로, 문서를 보관하던 곳이다.], 한남루[* 현재 복원된 건물로, 남한행궁의 외삼문루이다.] 등이 있다. [각주] ----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남한산성, version=212, paragraph=3.2)] [[분류:대한민국의 사적]][[분류:조선의 별궁과 궁가]][[분류:행궁]][[분류:방화로 소실된 문화재]][[분류:광주시의 문화재]][[분류:광주시의 역사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